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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 2009.07.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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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버스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재미나게 얘기하고 있다. 흰머리에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아주머니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검은 머리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얘기하고 있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무슨 얘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뒤돌아 앉아서 얘기하는 분의 표정을 보니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많았지만 웃는 얼굴을 보니 꽤 귀여운 얼굴이다. 주름살이 그 귀여움을 많이 가리고 있긴 하지만... 

나는 원래 버스나 지하철에서 들리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잘 듣지 않는 편이다. 큰소리라서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들릴 듯 말듯하게 들리는 얘기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아마도 귀여운 표정으로 웃는 주름살 많은 아주머니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는 주장과 확실하지 않으니 그냥 가까이 가서 내리자는 얘기인 것 같았다.

"무슨 로터리에서 내리면 거기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고 했어."

"누가 그래?"

"지금 내가 그러잖아."

"돈암동에서는 마을버스가 있는 것 같은데, 이쪽 방향에서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

"가까이 가서 내려도 어차피 걸어서는 못 갈텐데..."

"맞아~ 그 언덕을 걸어서 올라갈 수가 없어~ 택시 타고 올라가야 해"

"그러니까 내려보고 마을버스 없으면 택시타면 되잖아~"

"확실하지 않으니 다음에 그렇게 가자."

"그럼 물어보고 마을버스 타고 가자~"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무표정하게 서 있다. 검은 머리 아주머니가 옆에 서 있는 여자분에게 뭔가를 물어본다.

"이번 정류장을 무슨 로타리라고 불러요?"

무표정하게 서 있던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움직이며 대답을 한다. 로타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냥 고개만 까딱했으니까...

"여기 로타리 맞네~"

고개를 들어 버스 앞쪽을 보던 검은 머리 아주머니의 말이다.

"일단 내려서 마을버스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다음에 확실해지면 마을버스 타자니까~"

"내려서 만약 마을버스가 있으면, 나에게 천원 줄꺼야?"

"천원? 내가 만원 주지~"

"좋았어~ 마을버스 없으면 내가 택시비 낼께~ 마을버스 있으면 만원 내는거다~"


이번 정류장이 무슨 로타리가 맞다고 확신한 아주머니는 이번에 내릴 태세다. 사실 이번 정류장은 '종암 경찰서'. 절대로  무슨 로터리라고 불리지 않는 곳이다. 무슨 로터리에서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야겠다는 얘기로 짐작해 볼 때, 아마도 고대병원을 가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도 '안암로터리'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종암경찰서에서 고대병원 가는 마을버스가 있는지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다.



맨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리는 문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려면 큰소리로 얘기해야 한다. 얘기가 잘 안 들려서 고대병원 가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이 사람들은 벌써 내기를 걸고 있는데 내가 참견을 해야 하나? 그들이 이번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든, 택시를 타고 가든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일인데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실에서 무슨 일로 옥신각신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선생님이 어떤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녀석과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녀석이었는데, 하필 내 옆에서 그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 가운데 누구의 말이 옳은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두 놈의 대화는 점점 수위를 높여서 내기까지 가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에서 제3자였으나,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놈들에게 자랑하려는 생각보다는 '사실은 이렇다'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나도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다'라고 얘기했다가, 나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누가 너한테 물어봤냐?"

사실 맞는 말이다.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어떤 것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펴고, 내기를 하고, 내기 결과에 따르고 하는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놀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재미있는 놀이를 내가 깨트려 버린 것이다. 부질없이 그런 행동 하는 사람을 '오자랖이 넓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행동, '오지랖이 넓은 행동'을 자제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오지랖이 넓은 행동'이 될지라도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종암 경찰서'에서 '고대병원'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내기에서 진 아주머니가 택시비를 내고, 택시타고 갈 것이다. 그들이 이번에 내리면 공짜로 가게 될 길을 택시비 내고 가게 된다. 버스에서 마을버스 갈아타는 것은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무슨 로터리'와 '종암경찰서 네거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다. 하지만 언뜻 들었던 '무슨 로터리'가 '안암로터리'라는 것은 모르게 된다. 또 대중교통으로 '고대병원' 찾아가는 길을 이번 기회에도 잘 알지 못하게 된다.

두 사람의 내기에서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가 종암경찰서에서 멈추려 하고 있었다. 조금 큰 소리로 얘기했다.

"안암로터리에서 내리세요~"

"거봐 여기서 내리라고 하잖아~"

검은 머리 아주머니가 급하게 일어서서 내리려고 한다. 내 목소리가 좀 작았나? 종암경찰서를 종암로터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주머니는 '안암로터리'라는 말을 듣고, '종암로터리'로 이해한 것 같았다. '안'과 '종'만 다르고 '~암로터리'는 똑같으니까...

"종암로터리라는 말은 없고, 종암경찰서 정류장이에요. 로터리라고 불리는 곳들은 길이 그냥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둥그런 곳을 만들어 두고 차들이 돌면서 지나가게 된 곳을 말하는 거에요. 안암로터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전에 안암로터리가 이런 로터리 방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로터리가 없어지고, 차들이 그냥 교차하도록 되어 있지만... 안암로터리에 둥근 원은 없지만 버스들이 둥글게 돌아가서 서게 되어 있는 것은 예전에 로터리가 있었던 흔적이에요."라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설명할 상황도 되지 않고, 그런 것은 아주머니가 궁금해 하는 내용도 아니다.

"아뇨 안암로터리요~"

안암로터리를 종암로터리(종암경찰서)로 잘못 알아들은 아주머니는 급하게 내리려 했다. 다행히 옆에 서 있던 어떤 아저씨가 손으로 막으면서 다시 알려준다.

"여기 말고, 안암로터리래요~"

검은 머리 아주머니가 약간 시무룩해진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두분 고대병원 가는거 맞나요?" 하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대화를 나누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른 승객이 불편해할 것 같았고 아직 몇 정거장 더 가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내리면서 다시 확인한 뒤에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고대앞'에 내리기 위해 내리는문으로 나가서 말을 한다.

"고대앞에 내리셔도 돼요. 고대앞에서 고대병원 가는 마을버스가 두 개나 있어요."

내 옆의 아주머니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나 보다. 마을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검은 머리 아주머니는 이제 신이 났다.

"거봐~ 마을버스 있잖아~ 얼른 만원 꺼내요~ 내가 천원만 내라니까 만원 준다고 하더니만... "

"일단 마을버스 타보고~"

"야~ 오늘 일당 벌었네~ 오늘 나서길 잘했네~ 잘했어~ 얼른 꺼내요~"

"지금 손님이 많잖아~ 복잡한데서 어떻게 꺼내~ 일당 벌어서 좋아? 신났네 신났어~ "

고대앞에서 내려도 된다고 정확한 정보를 줬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두분 시원하게 냉면 사 드시면 되겠네요~"

결국 헤매지 않고, 환승할인 받으면서 목적지까지 가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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