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수확의 10 이상이 교복물림처녀의 가느다란 팔에 실리였다.”(한웅빈·금수강산을 수놓는 처녀)
요즘 남녘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교복을 물려주는 일이 활발하다는데, 북녘에서도 그런 일이 많은 것일까? 그런데 ‘교복물림처녀’를 ‘교복을 물려받은 처녀’로 보면, 문장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일과 교복을 물려받는 일이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북녘 말 ‘교복물림’은 ‘학교를 갓 졸업하여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이다. 남북에서 쓰는 ‘책상물림, 글방물림’과 같은 말이다.
‘물림’은 ‘밥상을 물리다, 책상을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를 뜻하는 ‘물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상물림’은 공부하는 책상을 물렸으니 금방 공부를 마쳤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글방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물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책상물림’의 영향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글방을 금방 나왔다면 역시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북녘에서는 ‘교복물림, 학생물림’도 쓰는데, 교복을 금방 벗은 것, 학생을 금방 벗어난 것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것은 남녘의 ‘교복물림’이다. ‘물리다’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다’의 뜻도 있는데, 남녘에서는 이 뜻으로 ‘교복물림’을 쓴다. 사실 ‘무엇을 옮기는 것’이나 ‘무엇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나 ‘대상물이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남과 북이 다르게 쓰고 있다.
교복물림 / 김태훈 한겨레 칼럼 2008.03.16 (일) 오후 6:0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76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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